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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현대 그랜저, 에쿠스 탄생 배경

by 이제시작 2021.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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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 에쿠스의 탄생 배경

 

미쯔비시의 프라우디아(단종)과 에쿠스는 동일한 모델인데 현대가 베껴서 만든 것은 아닙니다.
이런 차 시리즈(!!)가 나오게 된 것은 미쯔비시 자동차의 사정 때문이었습니다.

미쯔비시는 1964년에 자기 회사의 최고급 모델인 데보네어(Devonair)를 만들어 도요타 크라운 등에 맞선 일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미국적인 스타일이라고 하여 꽤 인기를 끌었습니다. 보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군요.

그런데 아무래도 도요타, 닛산 등과의 경쟁에서 고급차는 밀린다고 생각했는지 미쯔비시는 모델체인지(풀체인지)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만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버렸습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이너체인지만을 거듭하면서 명맥을 이어 온 데보네어에는 두 가지의 별명이 붙었습니다. 첫째는 "미쯔비시 중역의 자동차"이고 둘째는 "달리는 시일러캔스"였습니다. 시일러캔스가 뭔지 모르시는 분은 주위에 물어보세요.

그랜져 데보니어


어쨌든 미쯔비시는 이 데보네어의 모델체인지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는데 문제는 비용이었습니다. 새로운 모델 하나를 추가하려면 각종 설비 문제로 막대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이때 미쯔비시가 묘안(?)을 떠올린 것이 바로 합작 관계에 있는 현대자동차였던 것입니다. 마침 현대자동차도 자신의 고급차를 갖고 싶었고 두 회사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져서 데보네어의 신모델의 개발이 진행되게 되었습니다. 미쯔비시가 처음에 현대에게 맡긴 것은 바디 일체의 제작이었습니다. 즉, 전자장비나 엔진을 제외한 차체 전체를 현대의 울산공장에서 모두 생산하여 일본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미쯔비시는 여기에다가 전자장비와 내장재, 엔진 등을 장착하여 "데보네어 V"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판매하였습니다. 이 때가 1986년입니다. (이러한 생산 방식은 이후 뉴그랜저와 에쿠스로 이어집니다.)

이 합작의 댓가로 현대자동차가 받은 권리는 로얄티를 물지 않고 자신의 브랜드로 동일한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과 V6 엔진 기술의 도입과 소형, 중형차에 장착할 DOHC 엔진 기술의 도입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현대자동차의 초대 "그랜저"가 탄생하였습니다. 그랜저와 데보네어V의 차이점은 엔진이었습니다. 데보네어V는 2.0V6, 2.0V6 수퍼차저, 3.0V6의 세가지 엔진을 장착하고 있었으나 그랜저는 4기통의 2.0 엔진을 장착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랜저는 나중에 2.4와 3.0V6를 추가합니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습니다. 일본에서의 데보네어V는 구모델보다는 판매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했던 데에 비하여 한국에서의 그랜저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입니다. 누가 오리지날이고 누가 라이선스인지 헷갈리는 웃기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일본에는 도요타 크라운이라는 막강한 제왕이 버티고 있고 이에 대항하는 닛산 세드릭이라는 강력한 적수도 있있어서 데보네어V 정도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던 데 비하여 한국에서는 그랜저와 경쟁할만한 뛰어난 차가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86년)의 데보네어V는 기술적으로는 크라운과 세드릭에 뒤지지 않거나 오히려 앞서는 면도 있었으나 문제는 사각형의 스타일과 브랜드 인지도였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하여 그랜저는 탄생하였고 현대자동차는 이 그랜저의 플랫폼을 이용하여 중형차인 "쏘나타"를 1988년에 탄생시켜서 대우 로얄시리즈를 무너뜨립니다.

한번 합작을 하게 된 관계는 계속 이어져서 1992년의 신형 데보네어/그랜저 역시 동일한 방법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바디, 즉 철판 가공 부품 일체를 울산 공장에서 생산하여 일본에 배로 실어 나르고 미쯔비시는 이것을 받아서 생산라인에 넣어 데보네어를 만들어냅니다. 제3세대 데보네어와 제2세대 그랜저(뉴그랜저)의 차이점은 역시 엔진입니다. 데보네어는 2.5V6와 3.5V6이지만 뉴그랜저는 4기통 2.0과 3.0V6였습니다.(나중에 3.5V6와 2.5V6 추가)

이번에도 결과는 전 모델과 같았습니다. 데보네어도 그럭저럭 팔리기는 했으나 시원치 않았고 하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디아망테에게 수요자를 뺏겨 버리는 문제점까지도 있었습니다. 그랜저는 이번에도 히트상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다가 보니 원래의 차는 미쯔비시 것인데도 불구하고 다음 모델 개발에서는 현대의 입김이 엄청나게 세져 버렸습니다.

미쯔비시는 데보네어라는 이름은 이 모델까지만 사용하기로 하고 다음 모델은 좀더 상급차로 만들어서 새로운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하고 자랑스러운 다이아몬드(미쯔비시의 상징은 3개의 다이아몬드)라는 뜻으로 PROUD+DIA라고 하여 PROUDIA(프라우디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개발을 추진했습니다. 엔진은 4.5V8을 주력으로 하기로 하고 미쯔비시의 GDI 기술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에쿠스 프라우디아


이번 모델에서는 정말로 현대의 입김이 세져 버려서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미쯔비시 디자인 팀과 현대 디자인 팀이 경합을 벌이는 전대미문(?)의 사건까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미쯔비시의 디자인은 롤스로이스와 같이 각지고 거대하며 중후한 이미지, 현대의 디자인은 기존의 그랜저(뉴그랜저)의 연장선상에 있는 디자인으로서 유선형을 강조한 날렵한 디자인이었습니다. 결국 최종 단계에서 미쯔비시측 디자인이 승리를 거두어 현재의 에쿠스의 모양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바디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현대에서 모두 생산하여 실어나르기로 했는데 또하나의 문제는 엔진이었습니다. 4.5V8을 생산하는 설비를 갖추려니 재정적으로 어려운 미쯔비시로서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여기에 이런 초대형 엔진을 어떻게든 갖고 싶은 현대의 욕심이 맞물려서 결국 미쯔비시는 울며겨자먹기(?)로 이 엔진의 생산을 현대에게 맡기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미쯔비시의 차세대 고급차에 들어갈 V8 엔진의 생산 라인은 현대자동차의 공장에 깔려 버린 것입니다.

미쯔비시는 프라우디아(리무진은 디그니티)라는 이름을 채택하여 데보네어의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고 현대는 이 차에 에쿠스라는 새로운(작명 센스가 의심스럽지만) 이름을 붙이고 그랜저는 그랜저XG라는 이름으로 미쯔비시와 관계 없는 독자적인 길을 걷게 해 버렸습니다.

이번에도 엔진은 다른데 미쯔비시는 4.5V8GDI, 3.5V6GDI이지만 현대는 3.5가 GDI가 아닙니다. 그리고 현대 것은 나중에 3.0이 추가되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하여 3대째의 한일합작 형제차인 프라우디아/에쿠스가 나오긴 나왔는데 미쯔비시에 문제가 있든 현대에 문제가 있든 이 차가 별로 시원치 않은 것 같습니다. 양쪽에서 많은 문제들이 있는 데다가 미쯔비시는 회사의 재정적 타격으로 인하여 "문제만 많고 잘 팔리지도 않는 차는 없앤다"라는 정책에 의하여 프라우디아를 없애 버렸습니다.

원래부터 바디와 엔진의 생산 라인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미쯔비시로서는 이 차를 없앤다고 하여 별로 손해보는 것은 없기 때문에 간단하게 정리해 버릴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바디와 엔진을 수입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현대는 이번에도 역시 이 차를 잘 팔고 있었고 더군다나 바디와 엔진의 생산 라인을 이쪽에서 갖고 있는 데다가 모델에 대한 우선적 권리(수출 등에 관한 것)까지도 갖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이 차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많은 오너 분들의 골머리를 썩이면서 오늘도 에쿠스는 생산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많은 전장 부분을 미쯔비시와는 별도로 독자로 만들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게다가 대강 만들고 한술 더 떠서 비표준으로 만든 부분까지도 많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문제가 일어날 지 알 수 없습니다. 다행히 엔진은 안 꺼지는 것 같군요. 미션은 문제가 많은 것 같지만...

현대자동차는 이 차를 만드는 것에 의하여 V8 엔진 라인을 거의 공짜로 얻은 셈이 되어 버렸습니다. 미쯔비시가 개발하였으나 현대의 엔진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미쯔비시는 요즘 회사가 망하느냐 생존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에 이런 것에 집착할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현대자동차에서는 이 엔진을 독자 모델처럼 취급하고 있으며 굉장히 힘을 쏟아서 손보고 있습니다. 과연 좋은 결과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전장 부분에 그 정도로만 힘을 쏟으면 많은 오너 분들이 지금처럼 분노하는 일은 없을 텐데)

현대에서는 원래 GDI인 이 엔진을 고쳐서 MPI엔진으로 만들어 팔고 있기도 합니다. 이것은 현대자동차가 이 엔진을 이제 완전히 소유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GDI에서 MPI로 고치는 것은 피스톤, 실린더 헤드 등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하므로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렇게까지 했다는 것은 원래의 4.5GDI 엔진에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관리자님 것은 3.5라서 상관없는 얘기이겠습니다만.

들은 얘기입니다만 이 사이트에 올라온 문제점들은 이미 개선 작업에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개선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아무튼 그랜저와 에쿠스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많은 분들이 알고 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자동차 잡지의 기자들도 이 정도까지는 알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차가 좋고 나쁜 것과는 관계없는 얘기입니다. 그냥 참고들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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